공백을 채워라 - 히가시노 게이치로(스포일링 있슴)
간만에 일본 소설을 고르다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시작부부터 낮선 풍경이 펼쳐진다.
어느 병원접수 대기실에서 의사의 면담을 기다리는 남자 주인공은 몹시 불안스러워 보여 시작부터 약간의 설레임과 가벼운 기대를 가지게 했다.
그리고 의사와의 면담에서 고성이 오가며 궁금즘을 자아냈는데 다름아닌 3년전에 시체를 검안하고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의사와 '지금 내가 당신이 죽었다고 한 그 사람'과의 명백한 입장차이로 실랑이가 벌어진다.
어찌된 일일까? 결국 소설속에서 이 이야기는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환생자들과 가족, 그리고 주변의 이야기를 다룬 특별한 주제의, 독특한 내용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죽음 당시의 기억을 찾지 못한가운데 3년전 회사 옥상에서의 추락사망이 자살로 위장된 살해로 의심을 하며 긴장감과 함께 미스터리 추리쪽으로 진행되는듯 하다 주인공의 자살에 대한 객관적인 정황이 하나씩 드러남으로써 또 다른 전환을 맞는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환생에 관한 종교적 주제는 아니며 불가사의한 이유로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돌아 오면서 겪게 되는 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환생자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될 잠재적 실업자들에겐 꽤나 큰 사회적 반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간다.
그에 맞서 환생자들은 그들의 잃었던 직장과 가정에서의 위치를 다시 얻기 위한 단체를 조직하고 죽음으로 인해 불합리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한 각별한 그들의 노력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와 지원을 얻으려 한다.
소설은 주인공이 회사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가며 실적을 내지만 누군가에 의해 성과를 빼앗기고 한직으로 물러나는 등 결코 우링하 크게 다르지 않은 조직내에서 생생한 비합리적인 현실을 직시한다.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며 피곤하고 힘들어도 이게 행복을 위해 나아가는 길임을 스스로 다짐하며 살려고 하지만 그 이면의 어두운 유혹과 절망, 좌절과 치열히 싸워가며 내색 않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하나의 육체에 다양한 분인(分人)들이 뒤엉켜 한사람의 인격이 형성되며 결국 자살은 "어느 한 분인이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는 또 다른 분인을 없애는 과정"임을 설명해 주는데 처음으로 접하는 용어와 이론임에도 어느정도 선뜻 공감이 간다.
한살이었던 아들이 네살이 되어 하늘 나라로 갔었던 아빠의 환생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내는 남편의 자살 후 시댁으로부터 "자기로 인해 자살"이라는 편견과 오해로 인해 가족관계를 끊고 살 수 밖에 없는 먹먹한 삶으로 인해 남편이 돌아왔음에도 결코 반갑기만 하지 못하는 현실의 벽이 있다.
심지어 사망후 수령한 보험금을 보험사에서 반환소송(살아 있음으로)으로 잃게 될 지도 모르는, 지금 살아가기에도 빡빡한 자산의 손실과 예전의 직장과 같은 수준의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을 갖는것도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고 또한 이전 동료들의 편견 또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그러다 갑자기 횐생자들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실종'이 이어지면서 주인공은 다시 죽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죽어서 청산하지 못했던 가족.친지들과의 앙금을 풀고 이해를 시키고 깨어졌던 관계를 시켜나간다.
그렇게 행복에 가까이 다가선 듯한 시점에서 소설을 끝난다.
결론은 비록 없지만 많은 것을 고민하고 깊게 생각나게 만드는 소설이다. 나 자신과 '살아 온 인생'도 반추하며 반성하고 멀리가 아닌 가까운 곳에서 작은, 소중한 행복을 느끼고 함께 해야 할 가족과 친구.회사동료들과의 새삼 깊은 인연에 몸을 낮추어 감사하는 게 가장 빨리 실천해야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