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그는 러셀의 패러독스1)로 잘 알려진 뛰어난 수학자였다. 또한 철학자로서 논리학을 통해 수학의 기초를 세우려 했을뿐더러, 거꾸로 수학적 방법을 논리학에 도입하여 기호논리학이라는 분야에 큰 공헌을 남겼다.
20세기 철학계에는 언어의 엄밀한 분석과 정의를 통해 신과 자유, 존재 등 철학의 전통적인 문제들을 풀어 보려는 분석철학(언어철학)이 크게 유행했다. 분석철학을 한 폭의 그림에 비유한다면, 러셀은 논리학과 언어 분석 작업을 통해 그림이 그려질 도화지를 펼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다.
러셀은 학문적 엄밀함에 목숨 거는 차디찬 학자에 그치지 않았다. 이미 소년 시절에 나타난 생활의 이중성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학문의 세계에서 그는 지극히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였지만, 일상의 삶은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는 평생 네 번 결혼했고 요란한 사회 활동 탓에 두 번이나 감옥에 갇혔다. 또,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으나 가난한 이웃과 사회 기구를 후원하느라 버스표 한 장 사기 어려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 가난한 전과자는 1950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 극적 반전을 보이기도 했다. 굵직한 사회적 쟁점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러셀의 이름이 등장했고, 그에 대한 찬사와 비난이 엇갈렸다. 러셀은 철학자라기보다는 사회 활동가, 문필가, 방송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 이은 러셀의 두번 째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한 내가 기독교인이 아닌 이유를 먼저 대야할까?^^
"그냥 나는 오롯이 나의 신념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성경의 좋은 말씀은 새기고 주변을 사랑하며 도우며 실천하며 살고 싶다."
20세기초.중 가장 뛰어난 작가이면서 실천주의자로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0세기초까지도 금기시된 영역으로 남아있던 종교의 본질적인 문제중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한 민중의 입장에서, 인간의 자유와 본성을 존중하는 기초에 근거를 두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비합리적인 강요와 광신, 성적 억압, 그리고 권력화된 종교의 맨얼굴을 낱낱이 폭로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두려움의 영역을 이용하여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를 없애가는 행태를 종교(특히 기독교) 라고 직시하며 종교가 인간위에 군림하는 자기당착에 빠진 권력으로 비판한다.
구체적인 삶에서의 예를 들어가며 어느 한 요소 배제함 없이 조목조목 문제점을 직시해가는 그의 논증은 전혀 빈틉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남성 중심의 철저히 파괴되고 무시되어 온 여성의 사회의 잘못된 역할과 위치에 대해 양성을 완전한 평등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일한 입장에서 남성의 문제점을 나열하고 평등해야 할 세상의 미래를 그려 본다.
사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 배경도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원론적이고 논리적인 문장을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만큼 그가 시대를 앞서 갔기 때문이 아닐까?
주옥같은 책 내용중 지극히 개인적으로 마음에 와 닿았던 내용들만 짬짬이 정리해 보았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 종교의 일차적이고도 주요한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려움은 잔인함의 어버이다. 따라서 잔인함과 종교가 나란히 손잡고 간다고 해서 놀랄 것은 전혀 없다. 두려움없는 직시와 자유로운 지성이 요구된다. 그러면 우리의 지성이 창조할 미래가 좋은 과거를 훨씬 능가하게 될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
종교는 문명에 공헌하였는가?
- 가족관의 애정은 예수 자신과 그의 추종자 무리에 의해 비난을 받았다. 예수가 마리아에게 "여자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요한복음 2장 4절), "내가 온것은 아들이 그 아비와, 딸이 그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함이니 아비와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마태복음 10장 35-37절). 이 모든 것이 교리를 위해 생물학적 가족관계를 끊으라고 말하고 있다.
- 오늘까지도 고루한 기독교인들은 뇌물을 먹은 정치가보다 간음한 자를 더 사악하게 여긴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 훙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성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 우리의 충동은 가능한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 하지만 종교의 이름으로 사랑과 자유가 제한되고 이성적이란 이유로 감성과 충동이 제한되는 비인간적인 삶으로 몰고 간다.
인간은 죽은 뒤에도 존재하는가?
- 내세에 대한 믿음을 야기하는 것은 이성적 논거가 아니라 감정적이다.
- 형이상학에서 위안을 발견하려는 욕망이 엄청난 오류를 지닌 추론과 지적 부정직성을 생산해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세의 생활
- 뜰을 삼면으로 에워싼 회랑을 따라 납골당마다 수북히 쌓여 있는 두개골과 뼈들이 무수한 사름들의 눈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마치 만인에게 평등의 교훈을 설교하는 듯 했다.....매장과 발굴이 이어지는 중에도 이곳은 대중들의 휴게소이자 만남의 장소 구실을 하였다...잔인함은 일반 대중에게 가장 인기있는 즐거움의 하나였다.
토마스 페인의 운명
- 이성의 시대 : 나는 한 분의 신을 믿으며 그 외에는 없다. 그리고 나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바란다. ...나는 인간의 평등을 믿는다. 그리고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고, 우리와 같은 인간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종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세대
-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 남은 것은, 비록 그들의 목적이 어리석은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우리시대의 새 지식은 옛방식들이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세로운 양식이 불가피해졌다.
- 성을 나쁘게 보는 감정은 행복한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남자로 하여금 관계하고 있는 상대 여성을 경멸하게 만들며 때로는 여성을 학대하고픈 충동까지 일으키게 한다. → 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에서 양성평등이 시작됨을 지적한다.
우리의 성윤리
- 정신을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는 소망은 세게의 많은 위대한 종교를 고취시켰으며 현대의 지식인 사이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희하고 잇다.
- 평등은 두가지 방법으로 보장될 수 있다. 우선 남자들에게 과거에 그들이 여자들에게 강요하였던 것과 똑같은 엄격한 일부일처제를 강요하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전통규범의 적당한 완화를 남성은 물론 여성에게도 허용하는 것이다.
- 성적 주제들을 철저히 공개하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이 그것을 과도하게, 불결하게, 혹은 불건전하게 생각하는 것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인 동시에, 계몽된 성 도덕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준비작업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자유와 대핵
- 이 나라의 학문의 자유는 두가지 근원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데 경제 및 신학상의 검열권을 자신들에게 두려고 애쓰는 금권 정치와 교회가 바로 그것이다.이 두 세력은 공산주의 비난에서 쉽게 결탁하여 비위에 맞지 않는 견해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무턱대고 공산주의라고 한다.
- 자유주의 관점과 비자유주의 관점의 근본적인 차이는, 전자는 모든 문제에는 토론의 여지가 있고 모든 견해에는 크든 작든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보는 반면, 후자는 특정 견해들을 절대로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그러므로 그에 반하는 어떤 의견도 말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미리 정해버린다는 것이다.
- 권력행사가, 특히 이름없는 개인이 저명한 사람에게 힘을 행사하는 때는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 대학에서 그들 상관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군중들의 비합리적인 열정때문이며, 만일 합리적 사고 능력이 보편화되기라도 하면 자신들은 추락되고 만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중대한 지적 진보란 것은 무릇 외부의 견해로부터 일정정도 자유로울때 가능한 법인데, 정통주의자들이 신의 의지에 바치는 것과도 같은 종교적 존경심을 가지고 다수의 의지를 곳에서는 그러한 독립성이 존재할 수 없기때문이다. 다수의 의지를 존경하는 것은 신의 의지를 존경하는 것보다 해롭다.
- 도덕적으로든 지적으로든 모든 진보의 근원은 기존 견해에 맞섰던 개인들이었다.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코플스톤 : 내가 말하는 것은 모든 대상에는 현상적 원인이 있다. 그러나 현상적 원인들의 연속은 연속의 설명으로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연속에는 현상적인 원인이 아니라 초월적인 원인이 있다는 거지요.
러셀 : 신부님께서는 하나님이란 뭐든간에 선한 것, 혹은 선한 것의 총합, 선한 것의 체계를 뜻한다. 그러므로 뭐든 선한 것을 사랑하는 어린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시는 거지요?
코플스톤 : 저는 만일 필연존재, 즉 실재해야 하는 동시에 실재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없다면 마우것도 실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우연 존재들의 연속의 무한성은, 설사 그섯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아무 관련성이 없을 것입니다. 무엇인가가 분명 실재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설명하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며 그것은 우연 존재들의 연속 그 바깥에 있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러셀 : 도덕론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인류학이나 역사학을 공부하다 보면 나로선 끔찍하게 생각되는 행위를 실행하는 것이 자기들의 의무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그러느로 나는 도덕적 의무의 내용이 하나님에게 기원이 있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읍니다.
종교는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 인류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과거에도 그랬듯이 공포는 사람들을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구하도록 몰아가고 있다. 서구세계 전 지역에서 종교의 부활이 매우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세속적 강제력은 보다 확고해지고 하나님의 강제력은 보다 줄어 든다. 사람들이 도둑질을 하면 붙잡힌다고 생각할 근거는 더욱 많아지고 붙잡히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처벌하실 거라고 생각할 근거는 점점 더 줄어 든다. → 종교적 강제력보다 분명히 세속적 강제력이 커지만
- 당신이 볼 때 산아제한을 하지 않으면 당신이 불행해질 게 뻔하더라도 그들의 언명을 받아 들여야 한다. 결국 어떤 믿음이든 '거것이 진리이기 때문에'라는 이유외에 다른 이유로 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곧바로 악의 무리 전체가 들고 일어날 태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 기독교 호교론자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공산주의 해악을 기독교 국민들이 소위 누리고 있다는 축복과 대비시킨다... 공산주의자들은 역사를 날조하는데 교회도 르네상스 이전까지 똑같은 짓을 했다. 지금은 교회가 소비에트 정부만큼 나쁘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교회를 공격했던 사람들의 힘 덕분이다.
- 기독교와 공산주의를 공존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같은 둘 사이의 유사점이다. 과학자들의 경우 두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속세의 권력에 호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양쪽 다 무오류일 수 앖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 기독교가 공산주의와 다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과학적인 관점에서 설명을 하지만 결국은 그들사이의 유사점때문에 기독교는 극도로 공산주의를 경멸해 오지 않았을까?
- 기독교는 특히 거침없이 박해를 가한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와 구분되어 왔다. 불교는 특히 박해를 간한 적이 없는 종교이다....서유럽에서는 십자군의 종교적 열기가 유대인 학살로 이어졌다. 드레피스를 부당하게 고발한 것은 기독교인들이었고 마지막에 그의 명예를 복권시킨 것은 자유 사상가들이었다....기독교가 도덕적 감화력을 향상 시켰다는 모든 주장은 역사적 증거를 완전히 무시하서나 날조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 그 당시 이러한 진보적인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자성인이 얼마나 잇었을까?
- 지성이 우리의 문제를 야기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나 비지성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 많은, 더 현명한 지성만이 보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잇을 것이다. → 지성이 필요한 이유로서 이만큼 명확한 이유가 있을까?
종교와 도덕
- 불행에 대해서는 '거창한' 이유를 찾으려 드는게 통상적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비참의 원인을 자기 건강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신앙의 결핍탓으로 돌리는 것이 좀더 쉽게 자존심을 살릴 수있기 때문이다. → 그럼으로써 쉽게 자기 위안이 가능하지 많을까?
-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독단이 아니라 과학적 탐구의 태도이며 더불어, 수백만이 고통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하는 믿음도 필요하다. 그 고통이 스탈린이 이야기한 것이든 혹은 믿는 자들과 닯았다고 상상되는 신이 야기한 것이든 말이다. → 너무도 분명한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근저에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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