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의 한달을 혼자서 살기엔 많이 불편하지 않을까?한달 동안 무엇을 할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어떻게 세우는 것이 좋을까?
앞에서 언급했듯 비교적 한달 가량되는 긴 여행 초보자인 나에게도 그냥 가보자는 결심만 앞섰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것인지 명확히 정해진 것도 없었다.
막연히 몇번 짧게 바쁘게 유명하다고 알려진 곳 중심의 여행을 다니다 보니 실제 많은 아쉬움은 있었고 단지 넉넉한 시간을 감안하여 충분히 머무르며 제주를 하나씩 알아나가자는 방향 정도는 잡았지만 진짜 이번 여행의 목적은 무엇인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오히려 하루하루 살아가며 이게 제주를 찾은 이유중의 하나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새록새록 들었다.
처음 일주일 정도는 매일 여행 계획을 짜느라 제법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은데 이후에는 이틀 전 또는 하루 전 대략의 여행목적지가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했고 어떤 날은 몹시 피곤해서 하루 쉬는 일정으로 쉬다가 불현듯 이 곳은 오늘 가봐야지 하는 목적지가 뒤늦게 생겨서 급히 집을 나선적도 많았다.
자유로운 여행이란 그저 몸과 마음의 흐름대로 따르는 것임을 스스로 깨닫게 된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하루하루 주어진 넉넉한 시간이 있었고 무한하게 앞에 펼쳐진 멋진 자연과 문화와 역사가 있었다.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뭔가 채워지기 보다는 무의미하고 잡다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며 비워나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제주도 네잎 클로버와 야생화를 이용한 작품)
제주입도 19일차 (5/5 일) - 영실로 첫 윗세오름 등반
이런저런 이유로 처음으로 서귀포에서의 첫 번째 외박을 한 다음 날!
아침 일찍 근처 김밥천국에 들러 김밥 두줄을 챙기고 영실로 출발한다. 토요일의 쓰라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위해 조금 더 서둘렀다.
역시 이른 아침이라 오늘은 매표소를 광속으로 통과하여 탐방로 입구에 주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원한 숲길로 접어든다.
제주도에 들어 온 후 하루도 날씨가 너무 흐리거나 비가 내린 날이 없었다. 처음에는 막연히 "응 운이 좋군!" 하며 가볍게 넘어갔는데 진지하게 제주도 지역이 너무 가물고 있다는 걱정을 처음으로 해봤다. 여기도 다양한 농사를 짓고 강수량이 중요하게 관리가 될 터인데,...
윗세오름대피소까지는 약 3.9km 대피소에서 남벽분기점까지는 약 2.1km인데 일단 대피소를 오르고 남벽쪽의 진달래 개화정도를 확인하고 최종 코스를 정하기로 한다. 초반 평지 수준의 숲길을 총총 걷는데 나무들 사이로 암벽이 줄을 선 능선이 역광속에 희미하게 존재를 알린다.
그늘진 원시림길이 끝나자 저만치 길고긴 돌계단의 고생길이 시작되고 서귀포 푸른바다와 섬들, 주변의 산과 오름들이 대평원에 펼쳐지고 영실의 기암절벽과 오백장군상이 서서히 눈앞에 그 위용을 드러낸다.
웬지 모르게 한라의 정기가 느껴지는 기분이다.
한자의 영(靈)자의기운인가?
아니면 표지석의 오래된 이미지 때문인가?
이제막 한라산 자락으로 여명이 비추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이 시각의 기운이 이상하게도 좋게 느껴진다.
질서가 잡히기 직전의 자유로움과 마주하는 시간이 먹먹하긴 하지만 즐겁기만 하다.
아무것도 아닌 빈 종이에 비로소 그림을 하나씩 그려나가는 느낌일까?
나무계단 주변의 때 이른 진달래꽃이 간헐적으로 보이지만 역시 5월중순이 지나야 활짝핀 진달래꽃밭을 만날 수 있으려나?
급경사에서의 거친 호흡과 힘들어져가는 근력의 팽팽함이 걱정스러울 즈음에 넓은 평원인 "선작지왓"이 눈앞에 나타나 이제 평지에서의 속도전이 시작된다.
부드러운 곡선의 붉은윗세오름을 오른쪽에 끼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고 길가의 수많은 키작은 조릿대들이 마치 황금빛 억새풀처럼 반짝이며 바람에 흔들리는 풍광이 장관이다.
대피소에 도착하여 비로소 첫 휴식을 취하며 남벽으로 가볼것인가를 잠시 고민하다 일단 출발하고 돈내코쪽에서 오는 산인을 통해 진달래가 제법 운치를 더해준다는 정보에 걸음을 서두른다.
확실히 지난번 첫 어리목~돈내코를 처음탈 때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체력적 계산도 가능하니 걸음에도 힘과 속도가 더해져 간다.
오른편으로 방애오름을 끼고 돌아가니 시원하게 서귀포 남쪽바다가 또 다른 시야로 들어오는데 곳곳에 진달래가 제법 피어나 울긋불긋한 자태를 보여준다.
백록담을 배경으로 진달래꽃을 클로즈업해가며 즐겁게 남벽분기점에 도착하니 주변이 비록 듬성듬성 나긴했지만, 제대로 진달래로 둘러 쌓인 봄의 항연에 빠져본다.
한창 타오르는 시기의 한라산은 더욱 화려하겠지만
지금의 다소 이른, 그래서 드문드문 밝게 피어 난 진달래의 유혹이 오히려 더 강렬하게 와 닿는다.
지나치느니 조금은 부족함이 더 절실하기 때문일까?
백록담 북벽이 배경이 아니라도
한없이 포근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평원도
붉은 진달래와 더 잘 어울린다.
어디서 한컷을 찍어도 다 작품이다.
이렇게 지천으로 깔려 빛나는 조릿대 물결을 다른 곳에선 볼 수 있을까?
한라산만의 특이한 환경속에서 자라는 식물이라 한라산 조릿대라고 칭한다고 한다.
이제 5월 중순이면 제주를 떠나야 하는데 한번 더 이곳을 찾을 기회가 올까? 아무렴 다시없을 좋은 기회를 만들어야 겠지?~~
회귀하는 길은 넉넉한 시간과 주변을 꼼꼼히 관찰하고 지형도 파악해가며 의미있는 산책길이 되었다. 새삼 조릿대와 구상나무없는 한라산의 풍광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설문대할망의 신화에 나오는 오백장군상과 아울러 병풍바위와 기암괴석들이 보여준 한라산의 또 다른 강한, 부드럽지만은 않은,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윗세오름 전망대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윗세오름 주변의 평원을 일컫는다는 선작지왓의 넓은 평원엔 싱그러운 조릿대 황금물결로 가득하다.
곧 진달래가 붉게 타오를 5월 중순의 무르익을 봄을 기대해 본다.
영실로 내려서며 바삐 오르며 제대로 못본 아름다운 비경이 가득하다.
산나무와 죽은 나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푸른 서해 바다와 수평선, 그 위로 하얀 뭉게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한라산을 따라 높이를 다투며 줄지어 선 같은 듯 다른 형상의 오름들,...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설망대할망의 이야기중에 나오는 오백 아들들이 남긴 오백장군상과
마치 병풍처럼 턱 버티고 길게 선 병풍바위는 영실로 오르는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제주입도 20일차 (5/6 월) -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한 서쪽 해안 올레길 15a
(고내포구에서 바라 본 바다풍광)
모처럼 올레길을 걷기로 하고 서해쪽 해안과 얕은 산지대를 통과하는 15a로 정하고 일찍 한림항으로 출발!
비양도가는 배의 선착장이어서 슬쩍 배편을 확인하고 아름다운 항을 낀 마을을 따라 가볍게 걷기 시작했다.
해안을 떠나 예쁜 마을을 지나고 나지막한 언덕과 평지를 번갈아가며 걷는데 역시 풍광은 해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전형적인 밭농사 현장과 밭담, 산세가 험하지 않다보니 밭안에 제주도 특유의 돌담을 두른 무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시계가 좋아지면서 멀리 한라산의 웅장한 자태가 선명하게 보이니 다음날 계획된 한라산 종주에 대한 기대가 커져간다.
계속되는 풍광은 다소 지루함이 느껴지는 분위기이고 부지런히 걷다 보니 얼마전에 야광이 예뻤던 선운정사에 도착했다.
10km를 지나 납읍리 마을 식당에서 제대로 된 점심을 먹었다. 식당의 베스트라고 추천한 한우 내장탕도 시원하니 괜찮았고 싱싱한 천엽과 간도 서비스로 주셔서 남은 일정을 생각해서 충분히 영양보충도 마치고 걷기 시작하니 비로소 제대로된 풍광과 숲길을 걸으며 힐링되는 기분이 들었다.
가까이 있는 난대림숲길인 금실공원은 거의 원시림 수준이어서 새소리와 다양한 나무들과 식물들, 상쾌한 공기를 즐기며 20여분만에 숲밖으로 나왔는데 여기가 어딘지 한참을 방황했는데 알고보니 들어갔던 입구 다른길로 다시 나왔던 거여서 어이없는 웃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나지막한 산과 마을길을 지나며 가까와지는 한라산을 훔쳐 보며 걸으니 고내포구 해안이 눈에 들어오고 전형적인 밭길과 돌담을 끼고 돌아 올레길 종점에 도착했다.
선선한 바람과 파란 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하얀 구름을 인 파란 하늘의 조화에 감탄하며 올레길 여정을 마쳤다.
제주입도 21일차 (5/7 화)
제주 입도 처음으로 친구가 찾아왔다.
대학 동창이고 오랜 직장생활을 접고 화려한 백수생활을 잘 하고 있고 국내외 좋은산들 트레킹을 즐기는 친구라 한라산을 같이 타기로 했다.
전날 길었던 술자리와 폭주로 불편한 속을 진정시키러 이른 시간 해장국으로 속을 풀고 김밥 두줄씩 사들고 관음사 탐방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관음사~백록담~성판악' 코스의 가장긴 코스로의 등반을 시작했다.
친구는 몇번 정상을 오르고도 백록담을 나쁜 일기때문에 제대 보지 못했다고해 말끔히 갠, 청명한 날씨덕을 볼 기회를 제대로 잡았다.
삼각봉대피소에 이르는 길고 지루한 숲길을 지나 백록담 정상의 풍광이 보이고 본격적인 오름길 등산이 시작됐다.
몸은 힘들어지는데 주변의 풍광은 갈수록 좋아진다. 온통 조릿대 물결로 반짝이는 넖은 민대가리동산과 반대편에 우뚝 솟은 왕관봉, 백록담과 지척으로 연결되는 장구목까지~~
중간중간 짧은 휴식외 오른데 집중해가며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속은 좋지 않았지만 하산길 체력을 생각하며 김밥 한줄씩 먹고 표지석 인증사진 찍으려는 긴 줄을 바라보며 '등산보다 어렵다는 줄서기'를 피해 나무정상목에서 인증삿을 하고 긴 여정의 하산길에 올랐다.
가능하면 천천히 무릎과 발목을 보호하려 애쓰며 스틱을 사용해가며 내려가는데 올라가시는 분들의 힘들어하는 표정구경도 또 다른 재미거리이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았고 특히 어린 아이들의 씩씩한 도전이 많이 눈에 띠었고 외국인들도 쉽게 볼 수 있어 밝게 인사를 건네오기도 해서 한라산의 유명세에 괜히 자부심이 우러났다~~
진달래대피소에서의 편안한 휴식, 아직 철이 이른 진달래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산정상 호수로 유명한 사라오름을 올랐는데 비가 온지 오래돼서 얕은 물 구경에 그쳐 아쉬웠지만 전망대에서 올려다 본 한라산 정상의 웅장한 모습으로 위안을 삼았다.
성판악 코스는 오를 때는 몰랐는데 엄청나게 길게 이어지는 불규칙한 돌길로 하산하기엔 적합치 않은 것 같다. 차라리 성판악으로는 오르고 관음사로 하산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하루빨리 윗세오름대피소에서 장구목을 경유하여 백록담으로 가까이 오르는 길이 통제가 풀렸으면 좋겠다.
참고로 성판악에서 관음사 탐방로까지 택시비는 18000원~~ 버스로도 환승시 이용이 가능함. 먼저 281번 타고 475번 버스로 환승시 연결가능!
제주입도 22일차 (5/8 수)
전날 한라산 종주를 축하하며 길게 또 이어진 술자리~~ 멈춰야 할 때를 놓친 댓가는 하루종일 피곤함이 떠날 줄 모른다. 점심때 친구를 공항에 태워주고 가까운 원당봉과 삼양해수욕장을 둘러보았다.
원당봉은 제주항에 위치한 사라봉과 별도봉과 이어지는 7개의 작은 봉우리들의 집합군이며 특이하게도 낮은 분화구안에 문강사라는 절이 연꽃으로 가득찬 호수를 품고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문강사 입구에서 조금더 들어가면 원당사, 불탑사가 자리잡고 있다. 고려말 원나라 기황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원당사는 조선시대에 탑불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며 전란의 희생양이 되어 대부분 불타고 무너졌고 유일하게 현무암으로 만든 5층석탑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까이 자리잡은 삼양해수욕장은 검은 미세 모래로 유명한 백사장이다. 철이 이른 평일이었을까? 해안엔 산보하는 동네사람들외 별로 관광객은 눈에 띠지 않았다.
제주입도 23일차 (5/9 목) - 제주 동부 오름의 향연(산굼부리, 영주산, 문석이로름, 거미오름)
오늘은 제주도 오름(새끼화산)을 오르는 날^^
물론 제주도 와서 벌써 적지 않은 오름을 오르고 있지만 368개의 많은 오름이 있어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결정을 해야 효율적인 시간관리도 된다.
제주도 오름의 모든 조건을 가지고도 낮은 억새 평원과 넓은 분화구(얕은 꽃굼부리와 깊은 굼부리), 다양한 꽃들과 나무들, 그리고 아주 가까이 자태를 드러내는 한라산까지 많은 볼거리가 있는 산굼부리는 영화 '연풍연가'와 드라마 '결혼의 여신'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다음 영주산은 본래 한라산의 본 이름이었고 이름에는 신선한 영험을 가지고 있는산이다. 초입의 평원을 거쳐 낮은 능선에 올라서면 풀을 뜯는 소무리들을 만날 수 있는데 대부분 탐방로를 차지하고 몰려있어 소조심.소똥조심에 신경쓰며 올라야 한다. 개인 사유지라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자연과 인간.
확 트인 능선길에 길고 긴 나무계단의 시련이 시작되고 호흡도 가파지는데 강아지 한마리가 계단에 섰다 나를 인솔하듯 앞서간다. 기특한 녀석일세 했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낮게 위협하며 짖어댄다. 나를 보고 도망가는 형국에 계속 따라오니 위험을 감지했나 보다.
정상엔 산발감시초소가 있고 너무도 깊고 규모가 큰 분화구와 동북쪽으로는 능선이 터져 예쁜 굼부리가 만들어졌고 사방팔방 펼쳐지는 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내림길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긴 내리막 숲길이다.쉬엄쉬엄 바람과 그늘을 찾아 휴식해가며 내려서면 벌써 입구 주차장이다.
따라비오름은 오름중의 여왕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말굽형 분화구 세개가 다정하게 자리잡아 높고 낮은 부드러운 능선길과 키작은 억새풀로 완벽한 주변 전망이 가능한 시야를 어디서든 제공한다.
능선길 오르는 길은 그늘숲길과 급경사 나무계단의 연속이나 호흡 고르며 천천히 오르면 그리 힘들지는 않다. 네댓살 꼬마가 엄마손을 앙증맞게 잡고 쉬며쉬며 정상에 오르더니 나 하산때까지도 정상데크에도 신나게 놀고 있었다.
거미오름 가는 길에 노곤함과 체력충전을 위해 들린 식당에서 푸짐하게 서비스 받았던 돼지불고기 정식! 가격대비 맛과 정성, 서비스까지 베스트 초이스?~~
오늘 마지막 주인공은 전번에 들렀던 '백약이오름'의 맞은 편에 위치한 문석이오름과 거미오름(동검은이오름)이다.
네비를 따라 가는데 찾는데 애를 먹은 곳이다. 두세번 계속 길없는 분기점을 알려줘 당황스러웠는데 그냥 백약이오름으로 찾는 게 현명하겠다.
문석이오름은 2019년초부터 입산을 통제하고 있는데 그냥 중간 탐방로로 올라서서 거미오름을 가늠해서 많이 훼손된 낮은 초원길을 걸으면 된다. 멀리 뽀족하게 탑모양으로 솟구친 거미오름 정상을 보니 경사가 만만치 않음이 직감적으로 들었고 지금까지 오름중(한라산 주봉들은 제외) 그 난이도가 가장 높은 오름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정상에 열린 푸른하늘과 뭉게구름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풍광에만 집중하게 만드니 지옥 다음 천국형세이다~~
마지막 코스이기도 해서 시원한 바람 맞아가며 한라산부터 저멀리 우도, 성산일출봉, 지미봉, 다랑쉬오름까지 내가 올랐던 오름부터 제대로 볼 수 있다. 이쪽 정상과 달리 급격한 경사로 내려서면 언제 그랬냐듯 부드럽고 야트막한 초원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평원 너머 힘차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시원함을 더해준다.
낮은 마지막 봉우리를 찬찬히 타고 넘으면 갑자기 짙은 소나무숲이 급경사와 함께 흙길이 시작되는데 이 길이 어디로 연결되는지 걱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친절하게도 오름동호회에서 탐방로 이정표를 설치해두어 과감히 키근 풀숲을 헤치고 거미오름의 입구로 보여지는 방향으로 계속 속도를 내어 걷는데 곳곳에 무성한 찔레꽃나무에 긁혀 손등에 피가 맺혔다. 아까 문석이오름 내려서며 보였던 두봉우리중 오른쪽 봉우리를 우회하여 입구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이젠 약 1km 가랴의 포장길과 비포장길을 거쳐 백약이오름 주차장에 이르니 갈증과 함께 피로가 엄습해와 오늘 일정의 종언을 고한다.
제주입도 24일차 (5/10 금) - 큰노꼬메 오름, 족은노꼬메 오름
(큰노꼬메오름에서 바라 본 한라산)
어제 조금 힘들었지만 오늘은 서쪽 오름 탐방의 날!
큰노꼬메오름 &족은노꼬메오름 & 궷물오름 연결하여 오르기로 했다.
궷물오름 주차장 근처서 네비가 버벅대서 오늘도 알바 실시~~
궷물오름은 그냥 몸예열하기
족은노꼬메는 경사와 길이가 평범한 산타기 수준("족은"은 "작은"의 제주도 방언이다)
큰노꼬메는 원시림 숲길과 열린 하늘길 나무계단을 끝없이 오르는 제법 빡센 산행
족은노꼬메는 시작부터 정상까지 숲으로 이어져 분화구 구경도 마땅치 않고 정상에서 비로소 잠깐 열리 시야로 한라산 경치 관망이 유일했던 즐거움
큰노꼬메야말로 지금껏 올랐던 오름중 단연 최고의 경치와 전망을 보여주었다. 정상쪽은 나무가 없는 평원의 구릉이라 사방팔방 360도 시원한 풍광(백록담벽, 어생승악, 윗세오름(붉은오름, 누운오름), 영실오름길과 선작지왓평원)에 감탄사를 연발했고 조릿대와 억새풀 사이로 한창 피어난 진달래 군락까지 최고의 분위기를 제공했고 건너편 봉우리쪽은 능선인데도 원시림의 서늘한 그늘과 중간 쉼터의 너른 평상에서의 삼림욕까지 무상제공~~
주차장까지 길게(약2km이상) 이어진 상잣길도 윈시림속의 잘 정비된 길이라 무난했던 원점회귀였다.
다음은 족은노꼬메
- 높은 산중 작은 산의 의미로
큰산인 큰노꼬메와는 형제봉
등산하기엔 제법 경사도 있고 길이도 넉넉해 좋았지만 오름의 백미인 굼부리 시야 확보가 안돼 다소 아쉬움
제주입도 25일차 (5/11 토)
(표선 해수욕장의 아름답고 독특한 해변 풍광)
전날 지인부부와의 저녁과 술자리땜에 약간의 속쓰림을 안고 일어나 부시시한 얼굴형색에 해장라면과 식은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지하 사우나를 찾아 냉온탕을 오가며 기분전환 후 올레길 탐방에 나섰다.
오늘은 올레길3코스(3-b코스로 해인코스, 3-a는 내륙코스)로 정해 표선읍에 자리잡은 온평포구에 도착했다.
최근 날씨가 좋아 다행이기는 하지만 농사를 위해서는 비가 좀 와야하지 않을까 걱정도 앞선다. 산을 타고 올레길을 걷는데는 청명한 날씨만큼 좋은 건 없지만~~
역시 해안길을 걷는게 확실히 다양한 풍경과 색채로 덜 단조롭고 지루하지 않은데다 늘 시원한 바람을 쐬며 즐겁게 걸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엄청난 백사장 규모와 하얀 모래가 다양한 바다의 색상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유명한 표선해수욕장과 이에 못지 않게 바닷가에 자리잡은 넓은 초원의 평원위로 온통 노란꽃(금불초? 노란씀바귀?) 물결과 바다 해안선, 수평선과의 절묘한 조화에 감탄이 계속 나왔다.
올레길을 걷다보면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한두가지 인상적인 풍광만으로도 긴 올레길은 피로도 갈끔히 씻을 수 있어 참으로 좋은 것 같다.
제주입도 26일차 (5/12 일)
대학 친구부부와 함께 하는 첫 등산이다.
약간 길지만 완만한 어리목으로 오르고 하산시 경치가 좋은 영실로 내려서는 코스로 정했다.
날씨는 청명했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 무척 상쾌한 산행이었다. 일주일전 보다 확연히 진달래가 제법 피어나 안그래도 빛난 한라의 풍광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지난번 번거러운 생각에 오르지 않았던 윗세작은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한라산의 자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서쪽에 곳곳에 볼록볼록 솟아오른 다양한 오름과 한라산 백록담과 장구목, 민대가리동산, 웃세붉은오름, 윗세누운오름, 뱅애오름, 엄청난 넓이의 서작지왓을 물들인 진달래와 조릿대의 반짝거림, 중간중간 녹음을 드러낸 구상나무들과의 조화~~
영실로 내려서며 맑은 날씨적에 병풍바위들의 아찔한 높이와 위용, 각 능선을 따라 다양한 군상의 형태로 서있는 오백장군상...
오를 때마다 한라산의 매력에 빠져드는 자신이 걱정스럽다. 여기 살면 문제가 없겠지만 말이다~~
제주입도 27일차 (5/13 월)
(비양봉에서 바라본 한라산)
일단 큰지그리 오름과 곶자왈숲, 제주마 방목지 그리고 비양도
전날 친구가 묵고있는 교래휴양림에서 자며 즐거운 술파티를 늦게까지 즐기고 약간 이른 시간(6시)에 휴양림내에서 큰지그리오름으로 출발한다.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속도내어 십여분만에 온몸은 땀이 배여나 상쾌한 기분까지 든다.
이곳 휴양림의 곶자왈숲은 천년의 원시림을 간직한 드물게 온.난대 식물이 공존하는 특이한 산림에 오름 전망대에 이르는 약4km의 길 전체가 햇볕을 직접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깊고 넓다.
식물군은 너무도 폭넓고 다양하나 꽃들은 그리 많지 않아보였다. 정상 800m 앞두고는 갑자기 녹색숲대신 다소 황량할 수도 있는 매력만점의 편백나무가 엄청난 피톤치드를 내뿜고 있어 금방이라도 최고의 건강한 몸상태가 된듯한, 기분좋은 느낌이 계속된다.
아쉽게도 정상에서의 아름다운 주변 경치는 짙은 안개로 인해 시야확보가 불가한 상황 ㅠㅠ
중간에 길에서 만난 여유로운 노루의 아침식사!
편백나무숲에서 인기척을 느끼고도 한참 눈앞에 거닐던 꿩한마리!
돌아오는 길에 발을 대딛다 또아리를 틀고 길에 앉은 뱀을 보고 기겁을 했는데 지도 얼마나 놀라겠는가?~~
오름 여행을 마치고 비양도 가는 길에 잠시 둘러보았던 제주 제주마 방목지의 한가로이 풀을 뜯고 어린말을 돌보는 풍광~~
부지런 뜰며 일찍 큰지그리오름을 오른 이유는?
비양도 가는 12시배표를 현장에서 끊기 위해서?~~
지난번 올레길 15번 시작점인 한림항(도선대합실)에서 확인해 두었던 배시간과 비양도의 아름다운 사진속의 풍광이 나를 이렇게 이끌었다.
배는 약 십오분만에 섬에 도착해 먼저 제주도 별미중의 하나인 보말죽으로 점심을 떼우고 여유롭게 둘러본 비양도는 참으로 다양한 매력은 지닌 섬이었다.
먼저 비양봉은 정상에 규모에 비해 엄청난 경사와 깊이, 다양한 나무들로 빽빽한 개성있는 두 분화구가 인상적이었고 둘레길을 한바퀴 도는 게 힘들만큼 난이도 높은 경사길에서 모처럼 긴장감있는 오름(첫 능선 전망대에서 외쪽)도 좋았다.
무엇보다 정상에 우뚝선 무인등대와 육지쪽 한리산과 주변오름 친구들, 해안의 다양한 형상의 용암분출로 생긴 현무암 검은 바위군들의 개성높은 생김새에 놀랐다. 애기업은돌, 코끼리바위, 바다펄렁못...
하루 네편 운영되는 비양도배편은섬에서의 좀 여유있는 시간을 가지고 섬을 찬찬히 감상하길 바란다. 비양봉을 오르고 아름다운 등대와 마지막 오름길 좌우로 만개한 갯무꽃단지 하나만으로도 당장 본전을 뽑은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제주입도 28일차 (5/14 화)
오늘 오전.이른 오후는 충분한 휴식?
그리고 내일로 예정된 제주세계자연유산중 하나인 '거문오름'의 긴 오름을 위한 체력 충전 목적!
모처럼 정리도 하면서 간단 과일식사후 낮잠, 깨서 책 좀 읽고 떡보기 타임!
확실히 너무 긴 휴식은 체질이 아닌가?~~
우당도서관 빌린책도 반납하고 가볍게 운동겸 구제주 사라봉공원으로 출발!
오후 늦은 시간(5시)이라 많은 시민들이 녹음 우거진 숲길과 풍광이 너무도 좋은 해안길(18번 올레길 구간)을 다시 걷는다. 이번이 벌써 세번째 산책인데도 첫 느낌대로 너무도 눈호강이다.
오늘은 바닷가 일몰풍경을 훔쳐보려고 일몰시간 즈음에 사라등대에 도착하여 제주해안과 제주항을 바라보았다. 수평선위로 구름이 낮게 깔려 완벽한 일몰은 아니었지도 제주의 첫 일몰 분위기를 즐기는데 부족함은 없었다.
제주입도 29일차 (5/15 수)
드디어 실제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
이틀전 탐방을 예약해 두었던 거문오름 탐방날이다.
거문오름은 2007년 한라산고지대와 성산일출봉과 더불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오름(거문오름 분화구의 용암분출로 월정.김녕해안까지 이어진 약15.5km의 긴 용암동굴군의 시작)이다.
동쪽 김녕해안까지 길게 이어진 용암동굴의 출발점이자 한라산 분화구 둘레의 3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대표적인 말발굽형 분화구(화산폭발시 용암이 분출하면서 어느한쪽 또는 두쪽 이상 분화구 둘레가 허물어지면서 형성되는 분화구 형태)를 가지면서도 분화구 전체가 울창한 숲(붓순나무 구락지, 식나무 군락지)으로 둘러쌓여 다양한 화산 특성(용암협곡, 풍혈, 화산탄, 용암함몰구)과 동시에 일제 막바지 일본군의 마지막 항전을 앞두고 구축된 다양한 진지와 병참기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역사의 잔흔을 일깨워 준다. 참으로 다행인것은 연합군이 마지막 일본군의 옥쇄로 오키나와로 정하면서 더 큰 제주도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문오름 탐방은 철저히 3~4일전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받아 탐방객을 받고 있은데 하루 아홉차례 매30분 간격으로 최대 50명까지의 신청자를 미리 접수하여 탐방을 제한함으로써 세계자연유산의 보호와 함께 훼손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한다.(하루 최대 350명, 회차별 최대 40명으로 제한)
10시30분에 함께 모여 숲해설가의 소개를 시작으로 2시간30분 코스의 탐방(약 5.5km)이 시작되었다.
남쪽 능선이 터진 대표적인 말발굽형 분화구인 거문오름은 분화구 전체가 대표적 원시림인 곶자왈숲의 생태를 갖추고 있으며 능선길 또한 숲이 우거져 한여름에도 그늘 길속의 피톤치드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곳곳에 위치한 용혈을 통해 한여름에도 차가운 바람이 흘려나와 흘린 땀방울을 씻어준다고 하는데 차츰 더워지는 5월중순 제법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아가고 일부는 마지막 남은 긴(약4.5km)의 능선길을 위쉬움 달래며 완주하고 오늘 탐방을 마무리하였다.
세계자연유산센터 기획전시실에서의 한라에서 백두까지 사진전을 둘러보고 1층 카페에서 시원한 우유팥빙수를 즐기며 공식적인 제주한달 살기 여행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긴 시간이어야함에도 짧아서 아쉬운 시간이었다.
한라산과 많은 수의 오름과 올레길, 주변의 아름다운 섬들, 아직 첫발도 떼지 못한 둘레길은 물론 제주의 역사와 기록을 찾아보는 탐방, 마을과 해변 그리고 그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교감등 주어진 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은 아마도 한달살기에 대한 나의 기대와 욕심이 지나친 것도 있을것이다.
제주 마지막 날 (5/16 목)
계획했던 제주살기 한달이 후딱 지나갔다.
한달동안 걸은 거리가 총 430km로 제주 한바퀴인 250km의 약 1.7배의 거리를 걷고 또 걸은 셈이다
한달 동안 볼일있어 서울을 찾았던 이틀 정도를 빼면 실제 하루 약15km 정도를 발품팔아 돌아다닌 셈이다.
그렇다고그 동안 몰랐던 제주의 진면목을 어느정도 경험은 하고 가는 걸까? 아마도 절대적으로 아닐 것이다. 여전히 겉만 좀 길게 보고 가는 것일게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제주의 한달은 결코 길지 않았다는 것이고 스물스물 그러한 이유로 좀 더 제주인들의 삶속으로 한번 파고들어 생활하고 부대낄 수 있는 두번째 일탈을 꿈꾸리라는 것이다. 그만큼 제주의 한달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고 아직도 내면의 숨은 참모습, 어쩌면 우리가 바꾸어야 할 생각과 시각을 알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시간이었다.
한달내내 제주도엔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이 지속되었고 따가운 햇살아래 제대로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얼굴과 손등은 벌써 천연 선탠으로 새까맣게 탔다.
숙소인 오피스텔 한달 관리비는 총 14만원이 나와서 보증금 30만원중 16만원을 돌려 받았다.
오후 4시 50분에 제주항을 출발하여 여수항에 도착한 시각이 밤11시가 되었다. 노래로만 듣던 '여수밤바다'위에 서서 여수의 아름다운 밤풍경을 눈이 시리게 바라보았다.
드디어 제주생활이 끝났구나하는 안도감과 진한 아쉬움이 교차되고 곧 이어졌으면 하는 이차 제주생활의 기대와 함께 익숙했던 육지생활이 재개되었다. 먼 해외여행에서의 귀환도 아니면서 묘하게 더 먼 길을 돌아서 귀환한 기분이 듬뿍 들었다.
여수에서의 담날 아침 식사메뉴는 바로 갈치조림이었다~~ 비록 냉동이었지만 어릴 때 즐겨 먹었던 그 눅눅한 맛이 더 향기로웠다. 아쉬운 제주살이에 대한 추억 더듬기일수도 있겠다^^
길다면 길었고 개인적으로 짧다면 짧게 느껴졌던 제주에서의 한달이었다.
사람마다 취향과 과심이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축복같았던 한달이었다.
어쩌면 한달살기를 통해서 제주도에 정착을 해도 괜찮지않을까 새로운 고민도 안게 되었다.
가까운 지인은 얘기한다.
한달살기로 제주도에 정착하고자 하는것은 섣부른 판단이고 착오가 될 수 있다.
제대로 제주를 알기 위해서는 제주 사람들 품속에서 온전한 4계절을 보내보고난 후 판단을 하라고 젊잖게 충고한다.
좋은 충고이기도 하고 합리적이고 꼭 필요한 확인과정일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다른 계절에, 또 다른 이유로 다른 지역으로의 한달살기의 연습을 세번은 더하고 싶다.
육체적으로 힘들때도 있었지만 천성이 부지런한 편이라그런지 오히려 육체의 고단함 뒤의 심적인 만족감이 훨씬 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당장 또 다른 한달을 계획하는건 시간이 제법 걸릴것이다.
당장은 편안하게 주중 하루나 이틀을 잡아서 한라의 계절별 다채로운 맨얼굴을 보고 즐기고 싶다.
아듀 제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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